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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연쇄살인사건 8차 사건 수원 청주 4명 살인 진범 이춘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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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연쇄살인사건 8차 사건 수원 청주 4명 살인 진범 이춘재

화성연쇄살인사건을 자백한 이춘재가 당초 8차 사건은 모방범죄로 당시 22살 윤모씨가 범인으로 잡혔었는데 이 사건 또한 자신이 저지를 범행이라고 자신이 진범이라고 자백했다고 하는데요. 도대체 이춘재는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일까요?

8차 사건은 1998년 9월 16일 화성군 태안읍의 한 가정집에서 잠을 자던 13세 박모양이 하의가 벗거겨 숨진채 발견된 사건입니다. 9건의 사건에서 보였던 인적이 거의 없는 으슥한 야외에서 벌어지지 않았고 피해자들을 속옷이나 스타킹등으로 손발을 뒤로 하여 묶거나 속옷을 얼굴에 씌우거나 입에 재갈을 물리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경찰은 연쇄살인사건과 관련이 없다고 판단하고 별건으로 수사를 진행했었습니다. 그런데 이춘재이 자백을 한 사건중에 이 8차 사건도 자신이 저질렀다고 주장하고 있는 가운데 만약 이 사건조차 이춘재가 저지른 사건이라면 사회적 파장이 엄청날 것으로 보입니다.

 

 

사건발생 8개월 뒤 당시 박양의 오빠 친구이자 소아마비 장애를 가졌던 경운기 수리센터 수리공이었던 22세 윤모씨가 사귀던 애인이 떠나서 여성에 대한 원한이 있었으며 자신의 신체적 특징때문에 박양을 목졸라 살해했다고 자백을 하게 됩니다. 

당시 최초로 과학수사 기법이 인정을 받았는데 방사선동위원소 분석을 통해서 사건현장에서 발견된 범인의 체모와 윤모씨의 체모의 방사선동위원소분서 결과 거의 일치하여 범인으로 특정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법원은 모든 것을 인정하고 윤모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고 복역하게 됩니다.

그러나 문제는 2003년 5월 옥중 인터뷰에서 윤모씨는 자신이 저지른 범행이 아니라고 부인했습니다. "피해자 오빠의 친구였을 뿐 나는 범행하지 않았다. 내가 당시 자백하지 않았다면 나는 이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라고 부인하면서 파장이 있었습니다.

윤모씨와 함께 수감생활을 했던 제보자는 윤모씨가 수감생활 내내 줄곧 자신이 저지른 범행이 아니라고 억울하다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모든 것이 밝혀질 것이라는 말까지 했다고 합니다.당시에는 고문을 하면서 자백하라고 강압수사에 어쩔수 없이 자백을 했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윤모씨는 무기징역에서 감형되어 21년의 옥살이를 하고 2010년 가석방으로 출소한 상태입니다. 만약 윤모씨가 경찰의 강압수사와 고문에 의해서 허위자백을 한 것이 된다면 경찰의 수사에 대한 문제가 커질 것으로 보입니다.

 

 

전직 국과수 관계자도 방사선동위원소 감별법은 DNA 분석처럼 범인을 특정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얘기했습니다. 범인을 잡기위한 증거로 활용될 수는 있어도 범인을 특정할 수 없는 분석법이라고 했습니다. 당시 경찰들은 많은 압박을 받고 있었을 것이고 경찰의 신뢰가 많이 떨어진 상태였기에 강압수사의 의혹도 의심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경찰관은 윤씨의 지문이 나왔고 800여명의 남성들의 체모를 채취해서 체모의 모근이 유사한 32명으로 압축한 다음 8차 사건의 범인 체모의 혈액형이 B형이고 중금속중에 티타늄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서 이 32명중 B형이면서 방사선동위원소 감별법을 통해 티타늄 함량이 거의 유사한 윤모씨를 특정했던 것이라고 반박했습니다.

경찰의 강압수사의 논란이 커지면서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재심 변호를 맡아 무죄를 받아낸 박준영 변호사가 SBS에 자신이 윤씨의 변호를 맡을 의향이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만약 윤씨가 정말 억울하게 21년간의 옥살이를 어쩔수 없이 했다면 이는 국가가 반드시 배상을 해야 할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당시로써는 과학수사 기법이 처음으로 법원에서 인정을 받으며 화제가 됐었다고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지금 와서 이춘재가 자신이 저지를 범행이라고 하는 이유중에 하나는 자신의 영웅심리로 보고 있습니다. 이미 4차, 5차, 7차, 9차가 자신의 DNA와 일치하면서 부인할수 없으니 모든걸 자백했는데 이왕 자백하는거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리기 위해 허위로 자백을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겁니다.

희대의 살인마 유영철도 출장 마사지 여성등 총 26명을 잔인하게 살해했다고 자백했지만 결국 밝혀진 피해자는 20명으로 결론이 났던 것처럼 영웅심리로 지금껏 미제사건으로 있는 화성, 청주, 수원 등지의 사건들을 모두 자신이 저질렀다고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추가로 5건의 살인사건을 자백했었는데요. 

 

 

살인사건 5건 중 8차사건이 그 중 1건이고 나머지 4건에 대해서도 경찰이 집중적으로 수사를 하고 있는데요. 그 중 2건은 수원 미제사건 중 여고생 살인사건으로 1987년 12월 24일 외출을 했다가 1988년 1월 4일 수원 화서역 인근 논에서 숨진채 발견된 여고생과 1989년 7월 수원 오목천동 한 야산 밑 농수로에서 숨진채 발견됐었습니다. 

나머지 2건은 청주의 미제사건인데 1991년 1월 27일 오전 10시 50분경 청주시 가경동 택지조성용 콘크리트 관 안에서 방적공장 여직원 (17세) 박모양이 숨진채 발견됐었습니다. 콘트리트관은 지름이 1미터정도였고 피해자 박모양은 속옷으로 입이 막혀있었습니다. 양손은 뒤로 묶여 있었고 목이 졸려 살해됐었습니다.

박양이 발견된 곳은 청주의 택지개발공사 현장으로 깊이 2.5m의 하수관로가 놓여 있는 곳으로 공사현장의 관계자가 아니면 잘 알 수 없는 인적이 드문 곳이었습니다. 이춘재가 당시 화성과 청주를 오가며 포크레인 기사로 일했다고 하는데 하수관로 공사를 하려면 포크레인 기사가 필요했으니 이춘재의 자백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1992년 6월 24일 오후 5시 30분경 청주시 복대동 상가주택에서 주인 이모 여인이 (당시 28세) 하의가 벗겨지고 전화줄로 목이 졸린채 살해됐습니다. 이춘재가 포크레인 기사로 일한때가 1991년과 1992년 사이이므로 이 사건이 이춘재가 저지른 범죄라면 1994년 자신의 19살 처제를 성폭행 살해한 것까지 청주에서 4년간 3명을 살해한 꼴이 되는 겁니다.

 

 

모두가 성폭행 후 목을 졸라 살해한 사건들입니다. 화성연쇄살인사건도 그렇고 추가로 이춘재가 자백한 5건의 살인사건도 그렇고. 성도착증이라고 진술했던 처재 살인사건 조사를 받았던 이춘재의 아내의 말이 점점 사실인 것으로 밝혀지는 것 같습니다. 자신만의 시그니처를 남기로 지금껏 모든 살인에 대해서 너무나도 당당하게 자백하는 이춘재가 무섭네요.

이춘재가 정말 소름 돋는건 프로파일러들과의 대면조사에서 여성 프로파일러에게 "손이 참 예쁘시네요. 한번 만져봐도 될까요?"라는 질문을 던졌고 베테랑 프로파일러는 "끝나면 악수나 하시죠"라고 받아쳤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여성의 손이 예쁘다고 말하고 만지겠다고 말하는게 인간인가요? 악마인가요?

그리고 청주 복대동 자신의 집에서 19살 처제를 성폭행 살해했을 때도 망치로 머리를 3회 내리쳤다는 수사관의 질문에 3회가 아니고 정확히 4회 내리쳤다고 정정해줬다고 하는데요. 1회은 눈으로 잘 보이지 않은 상처인데 빗맞았던 것이라 두개골 함몰이 되지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만큼 자신은 전문가고 수사관이 뭘 아냐는 식의 우월감을 보여주는 싸이코패스 같습니다.

이춘재 도대체 이 사람 뭘까요? 까면 깔수록 소름이 돋는 악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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